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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암환자에게 세컨드 오피니언이 필요한 이유

기사승인 2024.06.09  20: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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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암환자에게 세컨드 오피니언이 필요한 이유


안녕하세요. 한의사 김형찬입니다. 상담을 하면서 수술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환자를 봅니다. 병원에서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말하지만 수술을 해야 한다면 일단 두렵기 마련이죠. 또한 일단 수술을 하면 이전으로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고민이 깊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얼마 전 있었던 환자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평소 허리와 무릎이 아파서 가끔 치료를 받으러 오시던 할머니께서 그날은 세상 다 산 것 같은 표정으로 오셨습니다. “자꾸 아프다고 하니까 아들이 큰 병원에 데려 갔는데, 당장 수술 날짜를 잡으라고 하네. 심란혀 죽겄어. 친구들 보니까 좋아지기도 하지만 고생만 하고 더 아프기도 하는데 어떡해야해?” 

그간 봐 온 것이나 현재 상태를 봐도 급하게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되었습니다. 그래서 관절에 무리가 되지 않게 수영장에서 운동하시면서 통증을 관리하는 치료를 받으시길 권했습니다. 그리고 고혈압과 당뇨 때문에 꾸준히 봐 온 가정의학과 선생님과 다른 정형외과 전문의의 의견을 들어 볼 것을 권했습니다. 

   
 

의사도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이 좋아하는 치료법이 있기 마련이고, 같은 환자를 봐도 수술을 할지 약과 물리치료를 처방할지 운동을 권할지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 할머니는 수술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셨고, 운동 다니시면서 주기적으로 오시고 계십니다. 그 후로 수술 안하기 천만다행이라는 말씀을 열 번 넘게 하셨지요.  

중한 병이나 수술 같은 큰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은 후에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환자들이 있습니다. 중한 병일수록 진단 자체가 갖는 충격이 크죠. 한 책에서는 암을 진단 받는 순간 남아 있는 생명 에너지의 절반 정도가 날아간다고 표현했습니다.  

충격이 크다 보니 합리적 생각을 하지 못하고 평정심을 잃기 쉽습니다. 평소 아주 이성적이고 담대했던 사람도, 균형을 잃고 제대로 된 결단을 내리지 못하거나, 엉뚱한 판단을 내리는 경우를 자주 봤습니다.   

이런 환자가 오면 먼저 결정을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상황을 볼 것을 권합니다. 제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중한 병에 걸렸어도 한의원에서 만나는 환자는 촌각을 다투는 응급환자인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실제 암이나 치매와 같은 병은 절대 며칠 사이에 급속도로 나빠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병명을 듣는 순간 다른 것을 다 날아가고 병과 치료법에만 집착하게 됩니다. 물론 결과가 좋으면 문제가 없지만, 너무 급하게 서두르다 보면 탈이 날수도 있습니다.    

   
 

조금 천천히 병을 바라볼 수 있는 방법으로 저는 세컨드 오피니언을 들어볼 것을 권합니다. 같은 병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능하다면 이전의 의사와 다른 성향의 의사에게 가볼 것을 권합니다. 같은 성향의 의사라면 그 상황을 놓고 같은 결론을 내릴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병에 걸리는 순간 의사도 사람이라는 사실을 깜빡 잊곤 합니다. 세컨드 오피니언을 들어보는 것은 내게 맞는 치료법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 외에도 장점이 있습니다. 다양한 의견들을 들으면서 내 병과 그에 관한 치료법에 대해 좀 더 잘 알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멘붕 상태에서 벗어나 심리적 안정감도 회복할 수 있습니다. 멘탈이 회복되면 전보다 조금은 편해진 상태에서 보다 나은 판단을 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여러 의견을 들으려면 시간과 비용이 더 들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것은 일종의 수업료라고 생각합니다. 시간과 돈을 들이더라고 치료의 방향을 제대로 잡는 것은 치료의 효과는 물론이고 이후의 삶에도 큰 영향을 줍니다. 이런 것을 감안하면 그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의사의 의견을 들으러 갈 때는, 이전 의료기관에서 검사한 기록을 갖고 가면 시간과 비용 모두를 절약할 수 있습니다. 

제가 병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구하고 알아본 후에 치료법을 결정할 것을 권하는 것에는 또 다른 속셈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병과 치료에 관한 최종결정은 환자 본인이 충분히 질문하고 숙고한 후에 스스로 내려야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이름이 가진 권위를 쉽게 인정해 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가습기살균제 사태나 다양한 건강관련 문제들에서 알 수 있듯이, 합리적 의심을 거두고 질문을 멈추는 순간, 우리가 이름이 가진 권위에 나를 맡긴 순간부터, 그 시스템의 피해자는 바로 우리 자신이 됩니다.  

의료도 마찬가지입니다. 병이 중할수록 충분히 알아보고 질문한 후에, 자기 스스로 충분히 납득이 되었을 때 선택해야 합니다. 조금 피곤한 일이기는 하지만, 저는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초기 불교경전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담겨 있습니다. 

“깔라마 인들이여,  
소문으로 들었다고 해서,  
대대로 전승되어 온다고 해서,  
‘그렇다 하더라’고 해서,  
우리의 성전에 써 있다고 해서,  
논리적이라고 해서, 추론에 의한 것이라고 해서,  
이유가 적절하다고 해서,  
우리가 사색해 얻은 견해와 일치한다고 해서,  
유력한 사람이 한 말이라고 해서,  
혹은 ‘이 사문은 우리의 스승이시다.’라는 생각 때문에  
진실이라고 받아들이지 말라.  
깔라마 인들이여,  
그대들은 참으로 스스로가 ‘ 
이러한 법들은 유익한 것이고,  
이러한 법들은 비난받지 않을 것이며,  
이런 법들은 지자들의 비난을 받지 않을 것이고,  
이러한 법들을 전적으로 받들어 행하면 이익과 행복이 있게 된다.’라고 알게 되면,  
그것들을 구족하여 머물러라.”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김형찬 원장은 생각과 생활이 바뀌면 건강도 바뀐다는 신념을 가지고 서울 명륜동 다연한의원에서 환자분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참장> <맛있는 음식보감> 등의 책을 썼습니다. 본 칼럼의 내용은 유튜브 채널인 <암환자생활교실>에서 시청이 가능합니다. https://youtube.com/@ohkinam  


 

김형찬 windfarm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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